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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러브

어느 시골 소녀의 바램


충북 영동군 용산면 어느 외딴 마을에는 다섯가구가 모여 삽니다.

마을에는 그 흔한 구멍가게도 하나 없습니다.

나이 많은 아버지와 필리핀에서 시집온 어머니를 둔 소녀는 말수가 적었고 매사에 소극적인 아이였지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지만 십리길을 나와야 하는 일은 소녀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면 소재지는 왜 그렇게 큰지! 산과 밭 사이가 익숙한 소녀에게는 남들이 봤을땐 정말 촌구석이다 싶은 면 소재지가 복잡한 도시 같아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소녀는,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터덜터덜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작고 움츠러진 어깨에 유난히 큰 가방이 안쓰럽던 경찰관들이 소녀를 불러 세웠습니다

얘야! 어디까지 가니?”

흠칫 놀라는 소녀가 왠지 안타까웠던 경찰관은 겁주려는거 아니다. 아저씨가 지금 멀리 순찰을 좀 돌까 하는데 괜찮다면 태워주고 싶구나라며 친근하게 소녀에게 다가섰습니다.


초기, 세명의 아이들과 시작

왜 그렇게 힘이 없냐는 말에 처음엔 입을 다물어 버리던 소녀는 점점 집안 이야기며,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야기 들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였고, 실상 시골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보다는 따돌림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녀는 아이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을 테고 아이들은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넌 한국인이 아니라고 소녀를 놀려대는 통에 작은 어깨가 점점더 움츠러 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소녀의 작은 몸이 한껏 움츠러 들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용산파출소 직원들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가 친구가 되어줄께! 그리고 친구도 만들어 줄께! 아저씨들만 믿어봐!”

그 뒤로 월요일 부터 목요일까지 야간 자율학습이 있는 날이면 소녀와 그리고 소녀의 반 학생들을 태워주기 위해 순찰차가 학교앞에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을 태워줄 순 없었기 때문에 미리 학생주임 선생님과 상의하여 집이 먼 학생들과 나름 학교에서 목소리(?)가 큰 학생들을 적절히 구성하여 야간 자율학습 귀가길 돕기 활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에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고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귀가길 돕기

특히, 소녀 덕분에 이렇게 귀가길 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소녀가 친구들도 같이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친구들도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다고 소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구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소녀는 점점 밝아졌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후 돌아가는 순찰차 안은 어느새 아이들의 사랑방이 되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스스럼 없이 경찰관들에게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엔 누가 나빴는지, 이런 잘못을 한 친구를 혼내 달라던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며

때로는 부모님 처럼, 때로는 스스럼 없는 동네 형처럼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 주면서 선생님이 한 분 으로는 부족했을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 나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야간 자율학습후 귀가길 돕기 활동이 올해로 3년째가 되어 갑니다.

초기 초등학생만 대상으로 하던것을 중학생까지 확대해서 시행하며 초등학생보다 더 고민이 깊은 아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가볍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학생까지 확대 시행!

중학생만 해도 머리가 커서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있지만, 꾸준히 아이들에게 다가서다 보면 사실은 아직도 맘여리고 어린 아이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바쁘신 부모님 사정으로 기댈곳 없는 마음과 일률적인 학교 교육에 상처입은 아이들도 그 안에 있습니다.

대대적인 설문으로 학교 폭력 피해에 대해 조사를 했을때에도 용산면에는 해당되는 내용이 없는걸 보면서 조금은 우리의 몫이 작용을 했겠지 싶은 마음에 뿌듯합니다.

새 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아이들의 사랑방이 되어 달려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외면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이 생긴 뒤에 가해자를 색출하기 전에 친구처럼 주변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옳은 길로 인도해 주는 경찰관이고 싶습니다. 

충북 영동경찰서 용산파출소 경장 송필헌